삼위일체의 중요성 – 하나님을 죽이는 자가 되려는가

삼위일체의 중요성

삼위일체의 중요성, 정말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구원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본질을 설명하는 개념인 만큼 기독교를 이해하려면 삼위일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신학자들이 삼위일체에 매달린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중요성 대해서 이렇게는 생각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삼위일체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을 죽이게 된다고.

하나님을 죽인 자들

2천 년 전. 자신들이 믿던 신을 죽인 이들이 있었다. 자신들의 오랜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온 신앙의 근원. 그분을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영접하기는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태형을 가하고 끝내 십자가에 달아 죽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자신들의 신에게 비아냥거렸다. 네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마태복음 27장 참조).

삼위일체의 중요성, 예수님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지만 당신을 믿는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신, 성부 여호와 하나님.

그들은 예언을 몰랐을까?

너무나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 당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성부 여호와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몰랐을까? 성경을 외우다시피 했던 그들이 몰랐을 리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 예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들은 성부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마태복음 2:5~6),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제자들이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고 외치는 것을 그토록 불편해했던 것이다(누가복음 19:37~40, 시편 118:25~26 비교).

또한 예수님께서 성부 여호와를 “아버지”라 지칭하시자, 바리새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5:17~18)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것이 곧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의미임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삼위일체 성부 성자 하나님의 ‘위격’이 도대체 뭡니까’라는 포스트를 정독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왜 그들은 성부 여호와께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을 알면서도, 그 예언을 이루신 성자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을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묻다, 자메 티소트, James Tissot, 삼위일체의 중요성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묻다 – 자메 티소트(James Tissot) 作

예언을 알지만, 믿지 않았다

간단하다. 그들은 성자 예수님을, 성부 여호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언을 문자적으로만 알았을 뿐, 마음속에서부터 믿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갈릴리에서 복음의 큰 빛을 발하시는 그분.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분. 그분이 곧 홍해를 가르시고 시내산에서 권능을 발하셨던 성부시라는 성경의 예언을 믿었더라면 그 광경들을 보며 느끼는 바가 있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런 광경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돌을 들어 치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믿노라 자부했던 성부 여호와 하나님의 말조차 믿지 않았던 것이다.

삼위일체의 중요성: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씀으로만 존재하시던 성부께서 성자의 입장으로 오시고, 승천하신 이후 다시 성령으로써 오신다는 것. 이것이 곧 삼위일체다. 올바른 믿음의 근간이자 하나님을 이해하는 첫 단추.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중요성. 그런데 올바른 믿음의 근간을 세우지 못한 채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성부와 성자께서, 성자와 성령께서, 또 성부와 성령께서 본질적으로 일체이심을 믿는 것. 이 개념이 확립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믿는 신을 배척하고 끝내는 죽이고 마는 끔찍한 오류를 또 범할 수 있다. 이미 이 땅에서 복음의 사역을 마치고 올리우신 성령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잘못된 삼위일체의 중요성 속에 빠져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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