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성부 성자 하나님의 ‘위격’이 도대체 뭡니까?

삼위일체 성부 성자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삼위일체 이해의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첫 단추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부와 성령, 성자와 성령 간의 관계는 더더욱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 성부와 성자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삼위일체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삼위일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 년의 난제가 되고 말았다.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처럼 ‘포장’하려다 보니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위격’이다.

세 위격?

‘위격(位格, persons)’은 하나님의 존재를 구별하는 것으로서,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페르소나가 ‘가면’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움직이는 사람은 분명 하나지만 그 사람이 쓰는 가면 세 개는 각각 별개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도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는 동일하시지만 삼위의 고유성은 각각 별개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성부 성자, 프리돌린 리버, Fridolin Leiber
성삼위일체 – 프리돌린 리버(Fridolin Leiber) 作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님이심은 맞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분은 아님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참고로 위 표현은 여러 서적에서 ‘위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말들을 굉장히 친절하고 쉽게 풀어서 쓴 것이다. 당장 ‘위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자 인터넷을 뒤진다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갑갑함을 느낄 수도 있다. 삼위일체에 대해 공부하려 하는 이들은 이 ‘위격’이란 단어부터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번지르르한 단어는 차용해서 썼지만 그 안에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좀 더 쉽게 삼위일체 성부 성자의 본질에 접근해보겠다. 참고로 지금부터는 ‘위격’이란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도 좋다.

삼위일체 성부 성자 하나님의 근본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에 위 예언을 기록했다. 그는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인데, 그 아기의 본질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증거했다. 또한 그 아기는 아들의 입장으로 올 것이며, 그 아기의 본질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고 덧붙였다. 쉽게 정리하자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아들의 입장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이 예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미 짐작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목자들의 경배, 삼위일체 성부 성자, 마티아스 스톰, Matthias Stomer
목자들의 경배 – 마티아스 스톰(Matthias Stomer) 作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누가복음 1:31~32)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당연히 성부다. 그런데 그 성부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셨다. 감이 오는가? 누가복음 1장만 보면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성자)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으로 보이지만, 이사야 9장과 연결해서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입장으로 임하셨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사도들은 예수님의 ‘근본’이 성부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빌립보서 2:5~6)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삼위일체 성부 성자의 관계를 이보다 더 완벽히 설명할 수 있을까? 성부와 성자는 각각 개체가 아니라 같은 분이며, 근본적으로 한 분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를 올바로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증거 외에도 다른 성경의 기록을 통해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이해해볼 수 있다.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의 일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신 일이 있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극진히 대접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내리시는데, 그 내용이 자못 희한했다. ’내년 이맘때에 내가 네게 돌아올 것인데,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방금 생각한 그대로다. 하나님께서 이삭으로 탄생하신다는 말씀이다(창세기 18:1~15 참조).

아브라함과 천사들, 아르트 데 헬데르, Aert de Gelder
아브라함과 천사들 – 아르트 데 헬데르(Aert de Gelder) 作

그러나 성부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다 해서 그 본질까지 실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삭이라는 ‘아들의 입장’으로 오셨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삭이 되셨다 하여 성부가 아니시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이 역사는 성부께서 성자 예수라는 ‘아들의 입장’으로 오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했다’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8:56). 성부께서 아들의 입장으로 임하실 날을,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 기뻐했다는 뜻이다. 앞서 삼위일체 성부 성자의 관계에 대해 촌철살인의 한 문장을 남겼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서도 부연설명을 해두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여러 차례 약속하셨는데 여러 사람을 가리켜 후손들에게라 하시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후손에게라고 하셨으니 바로 그리스도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현대인의성경, 갈라디아서 3:16)

그러나 이삭은 그리스도를 표상할 뿐 그리스도는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육체를 입으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하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일개 사람으로 오실 수 없을까? 중요한 것은 성부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실 능력이 있고, 나타나겠다고 예언하셨으며, 그렇게 나타나신 성부 하나님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육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평범한 육체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짝된 말씀들

이번에는 성경의 짝된 말씀들을 찾아 봄으로써 삼위일체 성부 성자의 본질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이해해보자.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사야 44:24)

성부 하나님께서 만물을 홀로 지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구절에서는 홀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라 증거하고 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골로새서 1:16, 18)

만약 삼위일체 성부 성자께서 각각 다른 분들이시라면, 성부와 성자께서 각각 창조하신 세계가 하나씩 별개로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모순이다. 성경이 모순이 아닌데 두 분이 개체시라면, 두 분 중 한 분은 만물을 창조하지도 않으시고 그러한 역사를 이뤘다 거짓말을 하신 셈이다. 당연히 어느 쪽도 성립할 수 없는 명제다.

성부 성자께서 모두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며 성경이 모순되지도 않고, 현재 지구가 하나밖에 없음을 설명할 수 있는 명제는 무엇일까? 성부 성자께서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시기만 하면 된다.

삼위일체 성부 성자, 삼위일체
평행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한, 만물을 지으신 성부와 성자는 같은 분이시다.

비슷한 구절이 또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6)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나 예수는 (요한계시록 22:13, 16)

성부께서도 성자께서도 스스로를 처음이자 시작과 끝이라 말씀하시니, 두 분이 각각 다른 분이시라면 누군가는 양보를 하셔야 성경이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끝이야 어떻게든 같을 수 있겠지만 시작까지 같다 하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어떤 분도 양보하실 필요가 없다. 성부와 성자는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결론: 삼위일체 성부 성자 하나님은 한 분

지금까지 삼위일체 성부 성자께서 근본 한 분이심을 살펴봤다. 삼위일체의 설명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상호간에는 같지 않다는 지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접근은 틀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하나님이시며, 상호간에도 모두 같으시다. 이 부분만 이해했다면 수 차례의 공의회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고 천 년이 넘는 교회사가 바뀌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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