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하나님 그리고 각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

안상홍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구원을 바라며, 전도하는 유일한 교단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의 교회다. 그들은 왜 기존 교단에서 부르는 여호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새로운 이름의 구원자를 믿고 전할까? 하나님의 교회 입장에 따르면,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될 수 없으며 구원자의 새 이름이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안상홍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는 성경적으로 합리적인 주장일까?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과 안상홍 하나님

안상홍 하나님, 이라는 표현이 합당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겠다. 구원자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면 ‘성령시대의 새 이름 안상홍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논할 필요는 자연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에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명하셨다. 우리는 이 장면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구원의 표인 침례를 주라고 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제자들에게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만약 구원에 있어 이름이 필요치 않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름을 세 개나 언급하기보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 혹은 ‘믿음’으로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언급하셨다. 다시 말해 침례를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이름(Three Name)이 필요함을 알려주신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우선 하나님의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는 이해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노라” 하고 언급만 해도 되지 않을까? 꼭 ‘성령 안상홍 하나님’이라는 이름에 그토록 집착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성도들에게 어떤 개념이었는지를 우선 알아봐야 한다.

성부시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장 11절)

이사야 선지자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성부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이름은 ‘여호와’다. 분명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 하셨다. 이 말씀대로 성부시대를 살아갔던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욥, 다윗 등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기도하고 찬송했다(창세기 9:26, 13:4, 28:20~22, 출애굽기 15:1~2, 욥기 1:21, 시편 150:1~6 외 다수). 그들이 구태여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하나님만 믿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무척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욥, 귀스타브 도레, Gustave Doré
욥이 친구들과 말하다 –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作
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부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원자인 ‘여호와’의 이름으로 비방과 조롱 그리고 핍박까지도 받았다.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놓였다(예레미야 20:7~10, 다니엘 3:8~28 참조).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그 시대의 올바른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며 때로는 그 이름으로 인해 다가올 모멸과 수치까지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 시대 구원자의 이름은 그저 존재하는 단순한 별칭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 혹시 성부시대에만 있었던 특수한 상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듯하다. 구원자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알겠으나, 그것이 ‘안상홍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애매한 문제에 대해서는 두세 증인을 통해 확정하게끔 하신 하나님의 이치대로(민수기 35:30, 신명기 19:15 참조), 구원자의 이름이 중요함을 알 수 있는 단서 역시 성부시대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성자시대: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8, 11~12)

베드로, 베드로의 예루살렘에서의 연설, 샤를 푀르종, Charles Poërson
베드로의 예루살렘에서의 연설 – 샤를 푀르종(Charles Poërson) 作
이제는 여호와 대신, ‘예수’라는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성령이 충만한 상태였다는 성경의 기록이 있는 이상, 이를 잘못된 주장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을 터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앞서 구원자의 이름을 불러야 할 뿐 아니라 그 이름으로 인해 핍박까지도 감수해야 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었다. 그런데 이 단락에서는 어떠할까?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사도행전 4:18)

더 이상 초대교회 성도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핍박 받지 않는다.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앞서 성부시대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다니엘 선지자가 핍박과 훼방을 받았던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여호와’라는 세 글자를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 ‘여호와’라는 세 글자 이름이 성부시대의 ‘구원자’였기 때문에 시련이 닥친 것이다.

이 사실을 성자시대에도 대입해 보자. 사도행전에서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라는 두 글자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결코 아니다. 그 ‘예수’라는 이름이 성자시대의 ‘구원자’이기 때문에 시련을 겪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 앞에서도 주눅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담대히 성자시대 구원자의 이름을 전파했다(사도행전 5:30~31, 42). 구원자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핍박이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핍박 앞에 당당히 맞서는 자들에게 놀라운 은사와 권능을 허락해주셨다.

성령시대: 안상홍 하나님 이름으로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다. 더 이상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예수’라는 이름으로 핍박 받는 일은 없다.

교회, 안상홍 하나님
아직도 ‘예수’라는 이름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 받는 이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이는 무슨 의미일까?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무슨 시대인가? 어느 교단에 속한 이들이든 ‘성령시대’라고 답할 것이다. 이유야 각자 다르겠지만 현재가 ‘성령시대’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현재 우리는 성령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더 이상 예수라는 이름으로는 핍박을 받지 않는다. 여태까지 살핀 글의 논지를 통해 추론해볼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 즉 ‘예수님의 새 이름’이 등장해야 함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를 기록했다. 이 계시 속에는 ‘장차 될 일’ 즉 미래의 사건도 담겨 있다(요한계시록 1:1, 19). 나(예수님)의 새 이름이 등장한다고 분명히 예언되어 있는 바, 예수님의 새 이름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진리를 알 수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 2장 17절을 보면, 예수님의 새 이름은 ‘받는 자’만이 알 수 있음이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당연히 이 이름을 핍박할 것이 아닌가? 앞선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미 과거에도 이러한 사건들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안상홍 하나님 믿는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하나님. 그 말을 들으면 대부분은 훼방할 것이다.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느 시대든 구원자의 이름은 핍박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핍박만 받는다면 구원자의 이름이라는 것일까? 안상홍 하나님, 그 호칭으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증거란 말인가? 천만에. 각 시대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는가? 축복과 권세가 주어졌다.

오늘날 안상홍 하나님 믿는 하나님의 교회의 행보를 보라. 전 세계 8천여 개의 교회가 설립되고, 설립된 각지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며 칭찬과 명성을 얻고 있다.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날로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을 몸소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토록 놀라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안상홍 하나님 이름을 전하고 또 그에 따른 핍박까지 이겨낸 결과다.

안상홍 하나님, 하나님의 교회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 안상홍 하나님을 깨달은 전 세계의 성도들

결론

구원자의 이름을 믿는 자는 언제나 핍박을 받는다. 성부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러한 역사가 존재했다. 오늘날 성령시대. 당신은 안상홍 하나님을 핍박하는 입장에 설 것인가? 아니면 성경의 증거를 따라, 안상홍 하나님 믿는 성도의 반열에 참여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마지막으로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이사야 52:6)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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