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자 영원한 난제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도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별칭으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핵심 교리는 여전히 기독교의 난제로 자리잡고 있다. 왜 기독교계에서는 자신들의 핵심 교리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도 중언부언 하고 있을까? 혹시 삼위일체에 대해 답답함을 가지고 인터넷을 헤매는 중이신 분이 있다면, 이 포스트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삼위일체 정의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자면, 한자어로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석 삼, 자리 위, 하나 일, 몸 체’, 즉 세 개의 자리가 있으나 그 근본은 하나다. 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는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어의 ‘트리아도스(Τριάδος)’, 라틴어의 트리니타스(Trinitas), 영어의 트리니티(Trinity)가 모두 ‘3인조’, ‘3개가 한 조로 된 것’ 등 근본적으로는 ‘거룩하신 세 분이 근본 한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위일체, 삼위일체 경배, 알브레히트 뒤러
삼위일체 경배 – 알브레히트 뒤러 作

이러한 논리가 어디서 착안되었을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호(聖號)가 두 개 등장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라는 이름만이 언급되고 ‘여호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일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실까 아닐까? 예수님의 근본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과 성경적 의문들은 점차 증폭되었고, 이것이 교리로 정립된 것이 바로 ‘삼위일체’라 하겠다.

삼위일체, 기독교의 핵심 교리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성경 속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가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는 분명 성경에 근거한 진리다. 그 분명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성부, 성자, 성령’이다.

앞서 구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신약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거룩하신 아버지란 의미의 ‘성부(聖父)’라 칭하고, ‘예수’라는 이름을 거룩하신 아들이란 의미의 ‘성자(聖子)’라 칭한다. 그리고 여기에 별도로 ‘성령(聖靈)’께서 존재하신다. 이 세 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며 이러한 믿음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히 성경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굳이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여러 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모두 하나님이시라는 내용.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하나님 → 한 분’
‘성부 = 하나님, 성자 = 하나님, 성령 = 하나님’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누구나 한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계시고 그 분들이 모두 하나님이시라는 부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논리가 천 년이 넘도록 기독교의 난제로 자리잡고 있을까?

삼위일체, 기독교의 영원한 난제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 27:46)

예수도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1~22)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님이신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위 구절을 마주쳤을 때 큰 혼란에 빠진다. 십자가에 달리신 성자께선 누구에게 자신을 버렸느냐고 이야기하시는 것일까? 또한 성자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실까? 이러한 의문은 성경을 읽는 많은 이들을 적잖이 당황케 했다.

더군다나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구절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 역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라는 포스트에서 살피기로 하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삼위일체, 삼위일체 삼각형
삼위일체 삼각형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 하나님이시지만, 그렇다 해서 각각이 개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 이야기하자니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명제에서 어긋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 모두 하나님이시지만, 각각의 위격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다. 위의 도식이 이해가 가는가?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교회가 천 년이 넘도록 느껴온 감정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애매함을 명쾌하게 설명할 문장이 없기에, 성경을 연구했다는 학자들조차 애매한 표현들만을 차용하고 있다.

교계의 입장

서두에서 언급했듯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며 하나님의 신성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관련 설명은 난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뿐이다. 나름대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글이나 영상들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용두사미의 모습을 보인다. 여기 두 가지 논평을 보면 교계의 입장이 어떠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삼위일체론은 지성의 이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설명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해시키려는데 초점을 맞추면 실수하거나 실족할 수 있다. … 아무쪼록 삼위일체론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단성을 구별하는 준거기준이기 위한 설명을 위한 것이다.”

출처: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삼위일체론에 대해, 기독신문, 2016. 02. 19. 13:08)

“삼위일체는 절대 철학적, 존재론적 지식이 아니다. … 목숨을 건 사랑을 논리로 이해하려 들지 마라”

출처: 궁금한데 물어볼 수 없었던 ‘삼위일체 교리’ (송병주, 미주뉴스앤조이, 2010. 07. 23. 14:16)
삼위일체, 삼위일체 의문
도대체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단 말인가!

이해를 하고 깨달아야만 믿을 수 있건만 어떻게 이해시키는 것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한 논리로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말은 어쨌든 논리적으로는 모르겠다는 결론이 아닌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님이신데 왜 각각의 위격은 다른지,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모두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어떻게 한 분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여러 자료들과 논문들을 뒤져봐도 공허한 문장들의 나열일 뿐이다. 이렇듯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경중을 떠나 모두가 ‘삼위일체’라는 난제에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제에 종지부를 찍는 한 구절

하지만 이 난제를 해결할 성경구절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내게 대해서 증거’한다고 밝히신 ‘성경’은 어떤 성경일까? 예수님께서 계시던 당시 신약성경이 존재했을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다름 아닌 구약성경이다. 많은 이들이 여태까지 삼위일체의 난제에 빠져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기록한 성경은 구약성경인데, 신약성경만으로 예수님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니 자꾸만 실타래 얽히듯 의문들이 꼬이고 마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그저 과거의 역사가 담긴 고서(古書)가 아니다. 신약성경과 짝을 이뤄서, 올바른 진리에 도달하게끔 하는 중요한 퍼즐이며 단서다. 이제 이어지는 포스트들부터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또한 그와 연계되는 신약성서의 내용들까지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다. 모든 포스트를 꼼꼼히 정독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진정한 해답에 도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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